청하가 어니냐고요?
바로 영일만 호랭이 꼬리가 보이는 곳이죠
제 어머니의 어머니께서 태어나서 자라신곳...어머니의 외가가 그곳에 있답니다. 그런데 어느날 라디오에서 청하로 가는길을 들려 주더군요 바로 한국 첫 콘서트 청하중학교에서 열렸답니다.


<조선일보 1998.05.03>

[아라이 인터뷰] "아버지고향 노래한 `청하로 가는길'…" (1998.05.03)

'청하로 가는 길'로 95년 일본 레코드 대상을 수상한 아라이 에이 이치(신정영일·48)는 재일교포 가수다. 그는 86년 서른여섯살에 처 음으로아버지의 고향을 찾았고, 그 감회를 장장 40분 짜리 노래에 담 아 열창했다. 그는 지금도 일본 전역을 돌며 자신의 뿌리, 재일한국 인의 삶과 애환을 노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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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스타이전에 보통사람으로 살고싶다"는 아라이 에이이치씨. <동경=이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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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하로 가는 길'을 작곡하게 된 동기는.
"아버지의 고향을 처음 본 감회는 한 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그래서노래를 만들기로 맘 먹었고 4년 후에 완성했다. '청하로 가는 길'은 작곡했을 때 레코드 회사는 반대했다. 개인 신세타령을 그렇게 길게 늘어놓는 노래로는 히트할 수 없다고 본 것 같다. 나는 그저 아 버지의 고향을 담담하게 노래하고 싶었다.".


-뿌리에 대한 생각은 언제부터 하게 됐나.

"(격앙된 어조로) 재일한국인으로서 어린 시절은 집에 가도 늘 아 버지, 어머니가 없는 생활이었다. 어머니는 일본인과 한국인 사이에 태어난 반쪽 한국인이었다. 아버지는 내가 태어난 직후 병원(결핵요 양소)에 입원(격리 수용)했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대신해 리어카를 끌고 라면을 팔면서 자식들을 키웠다. 그런 환경 속에서 일본인 학교 에 입학했고, '조센진'이란 손가락질과 차별을 받으면서 본능적으로 나는 일본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느꼈다.

나는 일본애들에게 지고 싶지 않았다. 뿌리에 대한 생각은 늘 가 슴 속 깊이 잠재해 있었지만 그걸 확인해야겠다고 생각한 게 36살 때 였다. 어머니가 죽은 뒤 한국 국적에 대한 강박관념을 떨쳐버리고 싶 었고 아버지의 고향을 한번 다녀와서 결정하자고 마음먹었다.

시골 마을(청하)에서 나를 따뜻하게 맞아줬다. 내 뿌리는 한국이 며 나에겐 가수의 길밖에 없다는 걸 다시 확인했다. 돌아와 당당히 일본 국적을 취득했다.".

-자신에게 청하는 무슨 의미를 갖는가.

"청하는 아버지의 고향이다. 아버지가 어린 시절 이 산 저 언덕을 뛰어다니며 사냥하고 인삼 캐던 곳이다. 나는 후쿠오카(일본 큐슈)에 서 태어났다. 그곳이 나의 고향이다. 두 가지는 양립할 수 있다는 것 을 깨달았다. 일본 국적은 나에게 일본에 살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젊었을 때 꿈은 지구를 자유롭게 여행하는 것이었다. 21살때 도망치듯 미국으로 간 것은 음악을 하고 싶어서, 그리고 새로운 세계 를 경험하고 싶어서였다. 일본 이외의 나라, 미지의 나라로 가고 싶 었다.하지만 재일한국인이라는 제약이 언제나 나를 괴롭혔다. 1년마 다 귀국해 재입국 허가를 받지 않으면 영주권이 상실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였다면 나는 일본으로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에서 공연하고 싶은 생각은 없는가.

"한국에선 아직 일본 노래 공연이 금지돼 있지 않느냐. 하지만 꼭 한국에서 '청하로 가는 길'을 일본어로 불러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 을 보여주고 싶다.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 대중문화를 개방할 뜻을 밝 혔는데 내가 초청됐으면 좋겠다. 노래 내용은 팸플릿에 한글로 설명 을 달고 한국 TV가 공연을 방송해준다면 더 좋을 것이다. 이런 과정 을 거치지 않는다면 공연은 한일 양국의 문화적 가교로서 의미를 띨 수 없다. 반대로 한국 가수들도 일본에 와서 공연하길 바란다. 강산 에, 전인권, 김태곤, 송창식, 한영애 모두 좋아하는 가수들이다. 그 들이 도쿄 한복판에서 한국말로 노래를 부를 수있어야 진정한 문화 교류이다.".

-최근 활동은.

"지난달 초순 반전 가수로 유명한 기나 쇼키치, 가토 도기코 등이 함께 베트남에 갔었다. 베트남 전쟁으로 고사한 망그로브 나무를 되 살리는 운동을 벌이는 악토만이란 자원봉사단체의 초청이었다. 나도 나무를 심고 왔다. 지난달 중순엔 교토 히가시혼간지(동본원사)에서 콘서트를 했다.".

-가수로서 철학이 있다면.

"나를 초청하는 사람들은 초등학교 교사, 회사원, 자원봉사단체 등 아주평범한 사람들이다. 콘서트 요청이 들어오면 내가 직접 내용 을 확인해 선택한다. 이벤트 회사나 매니저를 통하지 않는다. 나는 스타 행세를 하고 싶지 않다. 가수나 스타이기 이전에 보통사람이고 싶다. 보통의 것을 생각하고 보통의 행동을 할 수있는 사람…. 내가 가수인것은 무대에 섰을 때다. 무대를 내려오면 일반 서민과 다를 게 없다. 전철도 타고 버스도 탄다. 동네를 걷다가 누군가 나에게 아는 체 해오면 그와 인사를 나누고 고맙다는 말한다.".

-재일한국인의 문제점을 지적한다면.

"그동안 재일한국인에게 삶의 최대 목표는 돈을 버는 것이었다.돈 과 명성, 출신배경에 특히 약할 수밖에 없었다. 이젠 달라져야 한다. 확실한 아이덴티티(정체성)를 갖고 당당하게 일을 해야 한다. 인간적 으로도 흠을 잡혀선 안된다. 나는 '코리안 재퍼니즈'임을 숨기지 않 는다. 일본인들이 나를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더 자부심과 책임감 이 생겨난다. 일본 연예계와 스포츠계에는 한국계가 굉장히 많다. 유 감스럽게도 그들은 죽은 후에야 한국인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곤 한 다. 출신을 숨기려 하는 이유는 한 가지다. 자신에게 손이 될까 득이 될까, 인기가 떨어지지 않을까를 걱정하기 때문이다. 그 한계를 뛰어 넘어야 한다.".